경도법 1714년, 해상시계 네 대가 59년 만에 받아낸 상금
해도 위에 놓인 놋쇠 기계장치를 그린 삽화
1707년 10월, 영국 함대가 잉글랜드 남서쪽 실리 제도 인근에서 좌초했다. 여러 척이 침몰했고 사망자 규모는 자료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
사고의 원인으로는 항로상의 위치를 잘못 잡았다는 점이 지목됐다. 위도는 태양의 고도로 잴 수 있었으나, 동서 방향의 위치인 경도를 바다 위에서 재는 방법은 당시에 확립돼 있지 않았다.
7년 뒤 영국 의회는 이 문제를 상금으로 걸었다.
경도법과 상금의 구조
1714년 제정된 경도법은 바다에서 경도를 실용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자에게 포상을 지급하도록 했다. 심사를 맡을 기구로 경도 위원회가 설치됐다.
상금은 정확도에 따라 층이 나뉘었다. 경도 1도 이내면 1만 파운드, 3분의 2도 이내면 1만 5천 파운드, 2분의 1도 이내면 최고액인 2만 파운드였다.
경도 2분의 1도는 적도 부근에서 약 55km에 해당한다. 서인도제도까지 이어지는 긴 항해 끝에 이 오차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경도를 재는 원리 자체는 단순했다.
출항지의 시각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현재 위치의 정오를 관측하면, 두 시각의 차이가 곧 경도의 차이가 된다.
시간 차이 1시간이 경도 15도다.
"그렇다면 시계를 배에 싣고 가면 되는 일이 아닌가?"
원리로는 그렇다. 다만 당시의 시계는 배의 흔들림, 온도 변화, 습도, 기름의 점도 변화 앞에서 하루에도 몇 분씩 어긋났다. 몇 달짜리 항해에서 몇 분의 오차는 수백 킬로미터의 오차로 번졌다.
경쟁 방식도 있었다. 달의 위치를 별과 비교해 시각을 역산하는 월거리법이다. 이 방법은 정밀한 천문 관측표와 복잡한 계산을 필요로 했고, 뒤에 항해력이 간행되면서 실용성을 갖췄다.
📜 핵심 정리
✔ 경도를 왜 못 쟀나
위도와 달리 기준이 될 고정된 천체 지표가 없어, 두 지점의 시각 차이를 알아야만 계산이 가능했다.
✔ 해리슨이 한 일은 무엇인가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시각을 유지하는 시계를 40년에 걸쳐 네 차례 다시 만들었다.
✔ 상금은 받았나
단계별 지급과 의회 청원을 거쳐 상당액을 받았으나, 경도법이 규정한 최고 포상을 정식으로 수여받은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네 대의 시계
링컨셔의 목수 집안 출신인 존 해리슨은 독학으로 시계를 만들었다. 1730년대부터 해상용 시계 제작에 착수했다.
| 기기 | 완성 시점 | 형태 |
|---|---|---|
| H1 | 1730년대 중반 | 목재와 놋쇠를 쓴 대형 장치, 두 개의 진동체를 연결 |
| H2 | 1740년대 초 | H1의 개량형, 시험 항해에는 오르지 못함 |
| H3 | 1750년대 말 | 20년 가까이 붙들었던 원형 균형 방식 |
| H4 | 1750년대 말 | 지름 10여 센티미터의 회중시계 형태 |
주목할 점은 방향의 전환이다. H1에서 H3까지는 크고 무거운 장치였으나, H4에서는 손에 쥐는 크기로 줄었다.
대형 장치로 안정을 얻는 대신 빠른 진동을 쓰는 쪽으로 설계를 바꾼 결과였다.
1760년대 초 H4는 서인도제도를 오가는 항해 시험에 올랐다. 귀환 후 산출된 오차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작았다고 기록됐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상금이 지급됐어야 하지 않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위원회는 한 번의 항해만으로는 우연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재시험과 설계 공개를 요구했다.
지급 경위와 엇갈리는 평가
해리슨은 1760년대 중반에 1차분을, 1770년대 초 의회에 청원한 뒤 추가분을 받았다. 두 차례를 합치면 최고 포상액에 근접하는 금액이었으나, 지급 명목은 경도법이 정한 포상과 달랐다.
이 과정을 두고 평가가 갈린다. 위원회가 월거리법을 밀기 위해 해리슨을 부당하게 막았다는 서술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고, 위원회의 요구가 당시 심사 기준으로는 타당했다는 반론도 학계에 존재한다. 어느 쪽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이 글에서 단정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결과뿐이다
해상 시계는 이후 항해의 표준 장비가 됐고, 월거리법은 계산 부담 때문에 점차 밀려났다.
인물의 생애와 각 기기의 제원은 존 해리슨을 다룬 위키피디아 항목에 연도별로 정리돼 있다.
정밀 계측이 남긴 것
경도 문제는 정확도가 곧 안전이자 돈이던 첫 사례에 가깝다. 오차 몇 분이 배와 화물과 사람의 생사를 갈랐다.
계측의 정밀도가 순위를 가르는 구조는 지금도 이어진다. 종목별 기록과 순위를 모아 둔 자료를 보면 100분의 1초 단위가 등수를 나누는 장면이 반복된다.
자주 묻는 질문
Q. 위도는 왜 상대적으로 쉽게 잴 수 있었나.
A. 태양이나 북극성의 고도를 재면 관측 지점의 위도를 계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육분의 같은 각도 측정 기구만 있으면 바다 위에서도 가능했다.
Q. 경도 1도는 거리로 얼마인가.
A. 적도에서 약 111km이고, 위도가 높아질수록 짧아진다. 극지방에 가까워지면 같은 1도의 실제 거리는 크게 줄어든다.
Q. 해상 시계는 언제까지 쓰였나.
A. 20세기 들어 무선 시보와 전자식 항법이 보급되면서 주된 자리를 내줬다. 위성 항법이 표준이 된 뒤로는 예비 수단의 성격이 강해졌다.
상금이 걸린 해는 1714년, 마지막 금액이 지급된 해는 1773년이다. 59년이 걸렸다.

댓글
댓글 쓰기